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투아니아 왕국(괴뢰국) (문단 편집) == 왕위 결정과 즉위 == [[리투아니아]]의 왕위는 [[독일 제국]]의 황제인 [[빌헬름 2세]]에게 처음 제안 되었다. 이 제안은 리투아니아와 독일 제국 사이에 연합을 만드는 시도였지만 좌절되었다. 그리고 다른 제안은 빌헬름의 막내 아들 요아힘 공의 즉위를 요구한 제안이었는데, 이미 왕가를 지배 중이었던 [[호엔촐레른 가문]]의 확장 계획은 [[작센]]의 [[베틴 가문]]과 [[바이에른]]의 [[비텔스바흐 가문]]과 같은 가톨릭 통치 가문들에 의해 반대되었다. 이후 베틴 가문은 [[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]]의 둘째 아들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공을 책봉시켰다. 이러한 과정은 [[리투아니아인]]들에게 독립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졌다. 그리고 이 위협은 5월 19일 관료들의 회의 이후 더욱 절실해졌는데, "단호하고 영구적인 동맹"을 규정하는 조약들이 거의 리투아니아인들에게 자치권을 넘겨주지 않았다. 1918년 6월 4일, [[리투아니아]] 의회는 비밀리에 [[입헌군주제]]를 수립하고 동년 3월부터 논의되었던 [[빌헬름 폰 우라흐]] 공작을 추대하기로 결정했다. 빌헬름 공작은 [[스위스]]에서 [[리투아니아인]]들과 함께 일했던 [[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]]가 제안했다. 빌헬름 공작을 추대한 이유는 가톨릭 신자였고, 그의 할아버지의 결혼으로 [[뷔르템베르크 왕국]]의 왕위 계승권이 없었으며, [[호엔촐레른 가문]]과 밀접한 관계가 없었고, [[폴란드]]와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완벽한 후보자로 보였다. 하지만 [[독일 제국군]]의 방해로 인해 [[프라이부르크]]에 있는 빌헬름 공작을 만나기 위한 리투아니아 대표단의 방문은 7월 1일까지 연기되었다. 몇 일 뒤인 7월 11일, 리투아니아 [[공의회]]는 공식적으로 왕정을 수립하기로 결정했다. 그리고 8월 12일, 공의회는 빌헬름 공작을 리투아니아의 [[민다우가스 2세]] 국왕으로 추대하려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